#34. 재일조선인 학교, 1961년 [낮]
재일조신인 학교 현관 복도.
선반에 진열된 각종 상장과 기념사진들 중
나란히 함께 선 덕혜와 장한의 모습에 시선이 팔려 있는 김기자.
복동은 그 곁에서 복도를 뛰어다니는 저고리 차림의 어린 학생을 다그치고 있다.
장한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교장.
교장 반갑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cut to)
교장실 안. 테이블 위로 차를 내놓는 교장.
장한과 복동은 교장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있다.
교장 옹주님께서 세우신 천막학교가 벌서 30회 졸업생들을
배출했습니다. 옹주님은 저희 조선인들에게 은인이십니다.
행방을 알게 되시면 저희에게도 꼭 알려주세요.
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기자.
김기자 혹시 주변에 관공서에서 일하시는 분이 있을까요.
교장 졸업생들 중에 있긴 할 겁니다.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죠?
김기자 소 다케유키 백작의 주소를 알고 싶습니다.
교장 ....(고개 저으며) 저희도 어렵게 찾아가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만나주지도 않았어요.
의아한 표정의 김기자와 복동, 서로를 바라본다.
#35. 동경 재일교포촌, 복동의 가게 (밤)
영업이 끝난 가게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김기자와 복동.
가게 곳곳에는 덕혜를 찾는다는 내용의 전단지가 붙어 있다.
복동 옹주님을 찾고 나서는 어쩌실 생각이세요?
들어보니 한국 정부 쪽의 도움 없이는 모시고 돌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 같던데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술잔을 들이키는 김기자. 단호한 어조로.
김기자 도와줄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지.
복동 네?
김기자 (말 돌리며) 그건 그렇고, 자네는 그때 왜 귀국선을 타지 않았나?
표정이 무거워지는 복동, 남은 술을 따라 마저 비운다.
복동 제가 무슨 낯으로 돌아가겠습니까.
김기자 ....
잠시 흐르는 어색한 정적을 깨는 복동, 소리 내 울기 시작한다.
복동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때 혀라도 깨물고 확 죽어버렸어야 했는데..
옹주님을 찾는다 해도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습니다.
김기자 (술잔 채우며) 다 지나간 일이잖나.
마시고 털어버리게 . 나는 단 한 번도 자넬 원망해 본적이 없어.
옹주님도 그러실 게야.
고개 숙인 복동, 김기자의 위로에 흐르는 눈물을 춤친다.
복동 (훌쩍이며)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복동의 가게 밖.
창문 너머로 보이는 김기자와 복동의 실루엣이 보인다.
카메라 서서히 이동하면 .
#36. 영친왕 저택, 덕혜의 방(밤)/ 관물헌, 1930년 (밤)
달빛이 비치는 덕혜의 방 창가.
창밖을 바라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낯선 클래식 음반을 발견하는 덕혜,
음반 케이스 안에서 쪽지와 편지봉투를 꺼내본다.
<허락 없이 방에 다녀가는 무례를 용서하길 바라며. 김장한>
편지 봉투를 여니 깨알같이 적혀 있는 양귀인의 글자들이 보인다.
미친 듯이 뛰는 가슴. 단숨에 침대로 올라가 편지를 읽기 시작하는 덕혜.
off/양귀인 마마, 제 편지들을 받아보고는 계신 건지요.
답장을 아니 할 분이 아니신데... 도통 기별이 없으시니
못난 어미는 괜한 걱정에 밤을 지새웁니다.
-참덕궁, 관물헌 (밤)
깊은 밤. 방 안에서 초를 켜고 덕혜에게 정성스레 편지를 쓰는 양귀인.
수척한 모습이다.
off/양귀인 제 당부대로 보온병을 늘 지니고 다니시겠지요.
그리움이 이토록 사무치니 높이 뜬 저 달이 되어
마마께 닿고 싶은 마음분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건강히만 지내소서.
-창덕궁, 관물헌 덕혜의 방 (밤)
덕혜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조심스레 정돈하며 그리움에 잠기는 양귀인의 모습.
-영친왕 저택, 덕혜의 방 (밤)
떨리는 손으로 양귀인의 편지를 읽는 덕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37. 영친왕 저택. 장한의 방 (낮)
장한의 방 앞을 서성이고 있는 덕혜.
똑똑, 조심스레 노크해 보지만 인기척이 없다.
스르륵 열리는 문 너머를 몰래 들여다보다 이내 들어가 보는 덕혜.
장한의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 선반 위에 놓인 시집 하나를 집어 든다.
장한 옹주님. 무얼 찾으십니까?
깜짝 놀란 덕혜, 황급히 시집을 내려놓는다.
(cut to)
다다미방에 마주보고 앉은 덕혜와 장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덕혜가 먼저 입을 연다.
덕혜 ... 음반 잘 들었어요. 절말 고맙습니다.
장한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아메요코에 조선 음반을 파는 가게가 있으니, 언제 한번 모시지요.
덕혜 (일어나며) 지금 가면 안 되나요?
장한 지금요?
#38. 아메요코 거리 (저녁)
아메요코 거리를 함께 거니는 양장 차림의 덕혜와 장한.
덕혜의 손에는 조선인 여가수 윤심덕의 음방인 '사의 찬미'가 들려 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길가에서 파는 다이야키빵(붕어빵) 따위를 구경하는 덕혜.
이를 본 장한이 나서 빵을 사준다.
한입 베어 물며 맛을 음미하는 덕혜.
장한, 그런 덕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39. 카페 멕시코 (밤)
술손님들로 들어찬 카페 멕시코 내부.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홀 곳곳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른다.
바에 나란히 앉은 덕혜와 장한.
무대 위에서는 조선인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고, 덕혜가 이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칵테일이 놓여진 덕혜와 장한의 자리로 복동이 양주를 내온다.
장한 (손사래 치며) 옹주님을 독주 못 드신다네.
복동 그럼 치울까요? 특별히 내온 건데...
호기가 발동한 덕혜, 장한을 바라보며.
덕혜 (장한 보며) 전 그런 말한 적 없는데요?
저 마실 줄 압니다. 복동씨, 한 잔 주세요.
복동 영광입니다.
신이 나 잔을 채우는 복동.
걱정스레 덕혜를 바라보는 장한.
덕혜와 장한, 복동의 제의로 함께 건배한다.
장한 독한 술이니 천천히 드셔야....
덕혜가 잔에 담긴 양주를 한 번에 비우자 놀라는 장한.
복동 와... 이찌방!
(cut to)
시간 경과.
한산해진 홀 한편의 축음기 위에서 돌아가고 '사의 찬미' 음반.
윤심덕의 구성진 음색이 흘러나온다.
동시에 술잔을 비우는 덕혜와 장한. 복동은 바로 돌아가 일을 하고 있다.
덕혜보다 더 취기가 올라 보이는 장한.
장한 술이 받는 체질이신가 봅니다. 생각도 못했는데...
덕혜 처음 마셔본 건데 별거 아니네요.
안 해봐서 그렇지 하면 다 잘해요 나.
술이 오르는지 테이블에 팔을 괴는 장한. 덕혜를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장한 또 뭘 잘할 것 같습니까?
덕혜 (생각하다) 요리? 언제 한번 해드릴게요.
장한 (장난치듯) 말씀만이라도 황공합니다. 옹주님.
덕혜 덕혜라고 불러주면 안 돼요?
장한 .....
당황하는 장한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덕혜. 양손으로 턱을 괴며.
덕혜 불러 봐요.
장한 (끝내 못한다)... 죄송합니다.
가게 한편의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이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정적을 덮는다.
한숨 쉬며 등 뒤 의자에 몸을 기대는 덕혜, 두 눈에서 뜻밖의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그런 덕혜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장한.
눈물을 닦는 덕혜,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덕혜 난 장한 장교가 좋습니다.
장한 .....
빤히 바라보는 덕혜의 시선을 피하는 장한. 때마침 다 돌아가 멈추는 음반.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장한 음반이 멈췄네요. 제가 다시 틀고 오겠습니다.
비틀거리며 자리를 뜨다 발리 꼬여 넘어지는 장한.
덕혜, 그런 장한을 보며 피식 웃는다.
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