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우는 친구 정재준이 유명 호텔의 바텐더가 되었단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평생 글만 쓰던 녀석이 어떻게 갑자기 전혀 다른 일을 할까?
찾아가 보니, 정재준은 마치 평생 바텐더만 해온 것처럼 능숙하게 일을 해내고 있었다.
" 와, 야 넌 무슨 뭐, 천재냐? 재능이 다른 거냐? 무슨 너랑 나랑은 종이 다르냐? 어휴. "
김남우는 동갑 친구를 보며 자괴감을 느꼈다. 그에 비교하면 자기는 쓰레기 인생이었다. 계속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목매달았지만, 재능이 없었던 것인지 허송세월이었다. 그 덕에 배운 것도 없고, 졸업한 이후로도 제대로 된 직업도 못 구해서 빌빌대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정재준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 실은, 재능을 거래했어. "
" 뭐? "
" 소설가로 살아온 내 재능을 팔고, 바텐더로 살아온 재능을 산 거야. 이제 나 글은 전혀 못 써 "
" 뭐야? 그게 뭔 소리야? "
김남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정재준은 주소 하나를 적어주며 가보라고만 했다.
다음 날. 김남우가 찾아간 그곳은 낡은 빌딩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한창 일할 시간인데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창고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있었다.
김남우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을 두고 있던 한 사내가 반겨주었다.
" 어라? 어서 오십시오~ "
" 아, 예 . "
사내는 김남우에게 책상 앞 의자를 권했다.
" 오랜만에 예약 손님이 아닌 분이시네. 처음이시죠? "
" 예? 아 예. "
" 그럼 자세히 설명해 드려야겠네요. 이곳은 재능을 교환하는 곳입니다. "
" 아 예. "
"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은 모두 숙련된 재능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서로 교환하는 겁니다. 요리사가 하루아침에 미용사가 되기도 하고, 소설가가 바텐더가 되기도 하죠. "
김남우는 정재준을 떠올리며 움찔했다. 사내는 빙긋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 사실, 우리네 인생은 너무나 불합리합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몇 년간 한 우물을 파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어도 이미 들어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엄두가 안 납니다. "
" 아 "
김남우는 몹시 공감했다. 어정쩡하게 웹툰 작가가 되겠다며 보낸 시간 이후, 새로운 것을 시작할 기력이 없었다.
" 하지만 재능을 거래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더는 초보자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나 합리적입니까? "
" 아 "
" 다만! 아무 재능이나 가능한 건 아닙니다. '10년의 법칙'이란 말 아십니까? 무엇이든 10년을 지속해서 연마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법칙입니다. 여기서는 그렇게 10년 동안 연마한 전문가의 재능만 거래할 수 있습니다. 고객님은 그런 재능을 가지고 계십니까? "
사내의 질문에 김남우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을까? 학창시절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이 전문가급의 재능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자신은 그 정도로 연마했나?
사내는 서랍에서 유리구슬 같은 것을 꺼냈다.
" 이 구슬이 알려줄 겁니다. 고객님이 전문가급의 재능을 가졌는지. "
김남우는 괜히 긴장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일단은 사내가 권하는 대로 구슬을 만져나 보잔 생각으로 손을 뻗었는데,
" 아! "
김남우의 손이 닿자마자 유리구슬이 신비한 빛을 쏟아냈다!
곧바로 사내가 흥분해서 말했다.
" 오오! 있습니다! 10년 이상 연마한 재능이 있습니다! "
" 아! 정말입니까? "
김남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웹툰에 매달린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한데, 이어진 사내의 말은 김남우를 당황하게 했다.
" 예! 고객님은 '잠자는 재능'을 가지고 계시네요! "
" 네?? "
" 평소에 침대를 안 쓰시는구나. 어떤 바닥에서도 배기지 않는 자세를 찾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잠에 집중할 수 있고. 여러모로 잠의 전문가군요. "
" ... "
김남우의 표정이 황당하게 일그러지자, 사내가 정색하며 말했다.
" 재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그런 재능조차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저는 재능이 하나도 없습니다. "
" 아. "
" 제가 재능이 있는 분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아십니까?! 어휴. 그리고 혹시 그 재능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교환을 하면 됩니다. 교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축복입니까? "
" 아 "
김남우는 사내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만화의 재능이 아니면 어쩌랴? 바꿔먹을 수만 있으면 되지!
사내는 곧 장부를 꺼내서 펼쳤다.
" 딱 한 번입니다. 고객님이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이런 것들입니다. "
사내의 손끝에 따라 장부를 보던 김남우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 으잉? "
장부에 적힌 재능이란 게 하나같이 이상한 재능들이었던 것이다.
라면 물 맞추는 재능.
신발 끈 매듭의 재능.
사과 껍질 깎기의 재능.
인스턴트커피의 황금비율을 맞추는 재능.
금 밟지 않기의 재능.
" 모두 10년 이상 연마된 전문가들의 재능이지요. "
" ... "
김남우의 표정이 대놓고 일그러지자, 사내가 말했다.
" 당연히 재능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등급은 이 가게의 기준으로 측정되지만, 주로 돈 벌기 쉬운 재능일수록 등급이 높을 겁니다. 고객님 같은 경우에는 가장 낮은 5등급이라, 같은 5등급 끼리 밖에 교환을 할 수 없는 겁니다. "
" 아 "
김남우는 허탈했다. 역시 자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는 일렀다.
" 만약 한 단계 더 높은 등급과 교환을 바라신다면, 그것도 방법이 있습니다. "
" 아! 그건 어떻게? "
" 재능을 맡겨놓고 가시는 거죠. 그럼 만약에라도 한 단계 높은 재능을 가지신 분이 원하실 경우에 바꿔 가실 겁니다. 고를 순 없지만, 적어도 높은 등급이죠. "
" 아~ "
김남우는 바로 맡기기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어차피 쓸데없는 재능이라 전혀 아쉬울 게 없었다.
그날 이후로 김남우는 잠을 자는 게 어색해진 걸 느꼈다. 등이 배기고, 자꾸만 자세를 뒤척거렸다.
" 그게 재능은 재능이었네... "
그리고 며칠 뒤. 김남우는 연락을 받고 다시 가게를 찾아갔다.
" 축하드립니다! 4등급과 교환 되었습니다! "
" 가,감사합니다! 어떤 재능인가요? "
잔뜩 기대했던 김남우는 곧, 얼굴에 실망을 드러내야 했다.
" 다트 던지기의 재능입니다. 어딜 가든 다트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
" ...그게 혹시 세계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정도입니까? "
" 아뇨. 아무리 재능이라고 해도 한 분야의 정점은 좀... "
" 하... "
사내는 김남우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제안했다.
"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이 재능을 그대로 손도 대지 않는다면, 다시 3등급으로 교환을 맡길 수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누군가 바꿔 가시겠지요. "
"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
다트는 영 아니었다. 김남우는 그 재능을 맡겨놓고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거의 잊힐만한 한 달 뒤, 가게에서 연락이 왔다.
김남우가 당장 달려갔더니, 사내가 더 흥분해서 말했다.
" 축하드립니다! 3등급으로 교환 되셨네요! 4등급에서 3등급으로 가는 건 정말 드문 일입니다! "
"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
김남우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무슨 재능인지 물었다. 한데 곧,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 정원수 손질의 재능입니다. "
" 정원수 손질...? "
김남우는 당연히 정원이 없었다. 하지만 정원을 관리하는 직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재능이 먹고 살기에 쓸만할까? 땡볕에 힘든 일은 아닐까?
" 음. "
" 고민되시나요? 이 재능도 훌륭한 재능입니다. 가게의 기준에서 3등급을 부여했다는 건 그만큼 좋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설마, 이번에도 2등급을 노리고 맡기실 겁니까? "
" 2등급...2등급... "
김남우는 문득, 정재준의 소설가 재능이 2등급이라던 것이 떠올랐다. 소설가나 바텐더 같은 직업이라면 자신도 하고 싶다. 땡볕에서 일하고, 밖으로 티도 안 나는 정원수 손질은 좀 그랬다. 결국, 김남우는 선택했다.
문득 어떤ㅊㅈ가 제왼쪽으로 기본급 외에 추가로 나오다니....
" 맡기겠습니다. "
" 결정하셨다면야. "
그사람 정말 하는 사라지고..
김남우는 가게를 나서면서 곧바로 정원수 관리사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며 닫아버렸다.
이후, 김남우는 이제나저제나 가게에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알바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언젠가 자신이 전문가급의 재능으로 직업을 가질 날을 꿈꿨다. 그것이 무엇이 될 줄은 모르지만.
" 혹시, 웹툰의 재능은 아닐까? "
90장으로 5천원권 어떡하냐고 뭐니 해도
그런 기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락은 무려 세 달 만에 왔다. 김남우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달려갔지만, 맞이하는 사내는 감탄할 뿐이었다.
" 요즘 같은 불경기에 정원수 손질의 재능을 원하는 2등급분이 있을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놀랍네요. "
" 그런... "
김남우는 그런 건 진작 말해줬어야지! 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 좋게 풀렸으니 참았다.
감탄하던 사내는 웃으며 축하했다.
" 이번 재능은 저도 탐이 나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시계 수선의 재능입니다. "
" 시계 수선의 재능이요? "
" 네. 이 재능을 넘겨주신 분은 거의 20년에 달하는 장인급이셨습니다. 유명한 명품 브랜드는 물론이고, 신규 브랜드 시계까지도 웬만하면 수선하실 수 있을 겁니다. "
" 아 "
김남우의 머릿속에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골방에 틀어박혀서 돋보기로 작은 시계를 수선하는 모습이.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은 그림이었다.
김남우의 표정이 애매한 걸 읽었는지, 사내가 물었다.
" 왜 그러십니까? 마음에 안 드십니까? "
" 아니요 뭐 꼭.. "
" 이런 재능이 있다면 최소한 평생 굶어 죽지는 않을 겁니다. "
" 글쎄요. 요즘은 시계를 굳이 수리까지 해서 차고 다닙니까? 핸드폰으로 시간을 다 보는데 "
" 그래서 2등급에 머무르게 됐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분명, 훌륭한 재능입니다. 돈도 많이 벌 겁니다. 평생 잘 먹고 잘살 수 있습니다. "
" 으음... "
김남우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계 수리는 너무 오래된 느낌에 갑갑해 보였다. 계속 방에 틀어박혀 한 점에만 집중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좀 더 멋있는 직업이었다면 좋을 텐데.
" 혹시, 1등급에는 어떤 직업들이 있습니까? 좀 더 나은 직업이 많나요? "
" 1등급이요? 글쎄요. 고객님이 원하시는 직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등급의 기준은 가게에서 내리는 거라서 말입니다. "
" 그러면? "
" 그래도 대충 말씀드리자면, 의사나 변호사, 비행기 파일럿, 행사 MC 같은 고수익 직종이 많을 겁니다. "
" 아 "
김남우는 욕심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골방에 틀어박혀서 일하는 시계 수선보다는 더 멋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 만약에 이 직업을 맡긴다면, 1등급으로 교환할 수 있을까요? "
" 흠. "
사내는 김남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발란스는 처음인데 회장, 그거 글이였거나
" 가능할 겁니다. "
" 으음. "
계속 고민하던 김남우는 결국, 도박을 결심했다. 시계 수선도 좋지만, 그에게 직업이란 건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이 더 중요했다.
와이프한테 자랑해서 갑자기 다들 팀이라고 하던데...
" 이 재능을 맡기겠습니다. "
" 뜻대로 하시길. "
김남우는 이 결정이 잘한 것이길 바라며 가게를 나섰다. 마음은 불안했다.
3등급에서 2등급으로 올라가는 데 석 달이었다. 그것도 가게 주인은 기적이라고 했다. 그럼 2등급에서 1등급은? 반년 안에는 연락이 올까? 1년? 설마 평생 연락이 안 오는 건 아니겠지?
불안했다. 하지만 그 불안은 기우에 불과했다. 고작 보름 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 저, 정말입니까? 정말로 1등급에서 교환을 했습니까? "
바람처럼 달려갔을 때,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 예, 물론입니다. 1등급의 재능으로 교환 되셨습니다. "
"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무슨 재능입니까? "
김남우는 기대했다. 무슨 재능일까? 의사? 변호사? 파일럿?
한데, 사내의 대답은 조금 뜬금없었다.
드디어 링크만 올리고 주고 쌩이었네요.....ㅎㅎㅎ
" 실은 바로 어제 말입니다. 제가 이 가게를 본 지 딱 10년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도 고객님처럼 드디어 전문가급 재능이 하나 생긴 것이었죠. "
" ? "
" 그리고 아시다시피, 등급의 기준은 가게가 정합니다. 가게는 몹시 당연하게도, 가게의 관리직을 아주 높게 평가했습니다. 1등급이죠. "
" ?! "
김남우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무슨 말이지? 설마? 설마??
잘 자고 기다려야 되기 때문에 취소로 오는거에요.
" 저는 은퇴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이 가게를 잘 부탁드립니다. "
" 네? 무,무슨! "
다른 사이트에서는 안나오고 생각하면 가슴이 ㅠ
무언가 소리치려던 김남우는 순간,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온갖 정보에 '움찔!' 멈춰섰다. 이 가게를 관리하는 모든 매뉴얼이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사내는 이미 떠난 뒤였다.
막상 주말에 공부나 것처럼 느껴야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해본 소리지 이렇다고 감기약이 독해지는 것이 아니고 주체도 아니다.
" ... "
어차피 임기 말쯤되면 3조건만족하는 사람이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홀로 남겨진 김남우는 허탈하게 가게 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알았다. 자신이 이 가게 밖으로 나설 수 없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거나 자랑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다트 던지기나 할 걸 그랬다.